- 제목 : 클로젯 The Closet (2020)
- 개요 : 미스터리, 공포, 드라마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광빈
- 출연 : 하정우(상원 역), 김남길(경훈 역), 허율(이나 역), 김시아(명진 역), 박성웅(명진 부)
실종된 아이의 아버지 상원(하정우 배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봤을까 궁금해서 여러 리뷰들을 찾아본 결과, 이 영화로 인해 하정우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논란이 많은 걸 볼 수 있었다. 특히 나도 생각했던 부분인데, 아이 잃은 아버지 역할이 과연 이 배우에게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영화 보는 내내 어느 한순간을 꼬집어 말할 수도 없이 그에게서 아이를 잃은 고통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 때로는 한 배우의 연기에 몰입되어 그 배우가 그 역할 그 사람 자체로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그냥 하정우일 뿐 아이 잃은 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하정우 배우가 아직 미혼이라, 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이러한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보는 내내 그저 '나라면 어떻게 할까'하는 상상으로부터 나온 연기로 그친 듯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때문에, 이 영화의 실종된 아이 아버지 역할을 꼭 하정우 배우가 맡아야 했나 싶었다.
하정우가 연기한 상원이라는 인물은 참 정이 안 가는 인물이다.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사주고는 자기 만족 때문에 좋아하길 바라는 것도 그렇고, 아이가 뻔히 듣고 있는 곳에서 "아이 때문에"일터에 나가기 힘들다는 막말을 하기도 한다.
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자리 찾기에만 급급하다.
그래도 영화 후반부에서는 아이를 찾는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영화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또 상원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사지에서 데려온 후 퇴마사에게서 건네받은 견적서에 적힌 "이억오백만 원"이라는 금액을 본 상원은 잘 살펴본 후 견적서를 다시 퇴마사 경훈에게 돌려준다.
못 본 걸로 할 테니 다시 가져오라고.
경훈 덕분에 찾을 길 없었던 아이를 살려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건데, 이억오백만 원이 아깝다고?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아이에게는 "다시"라는 게 없다.
부모라면 전재산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 견적서를 열어 봤을 때, 감독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순간 그 장면에 집중해서 봤는데, 참 허무하게도 견적서를 다시 가져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상원이다운 행동이었다.
때로는 가볍지만 나름 전문 퇴마사 경훈(김남길 배우)
극 중 경훈(김남길 배우)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과거에 굿을 하던 중에 악귀에 의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칼로 그어 죽게 된다.
무당인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악귀를 찾아내려고 아들이 퇴마사가 되어 나선다. 영화 <귀문>과 정확하게 겹치는 설정이다. (<귀문>보다는 이 영화가 먼저 만들어졌다.)
퇴마 하던 중에 위기에 처한 아들을 도와주고자 죽은 엄마 무당의 영혼이 도움을 주는 것 또한 같았다.
퇴마 과정이란 것도 자신의 손바닥을 칼로 그어 피를 뿌리고, 뭔가를 태우고, 주문을 외우는 등 다 비슷하기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좀 식상한 느낌이었다.
김남길은 전문 퇴마사 역할인데, 그 인물은 무겁고 진중하기만 한 타입은 아니다. 남의 집 냉장고도 편하게 뒤지고, 집안을 살펴보기 위해서 상원의 집 인터넷 선을 몰래 잘라내고, 수리기사로 변장해서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가벼운 면을 갖고 있지만, 본업에 집중할 땐 나름의 전문성도 발휘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정우 배우가 했던 아버지 연기보다는 몰입해서 보기가 더 쉬웠다.
극 중 상원이가 아이를 찾을 때까지 계속 도움을 준 전문 퇴마사 경훈.
영화 초반에 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빗어 넘기고 때로는 가벼운 행동과 말투로 신뢰가 느껴지지 않았던 것에 비해서, 병원에서 깨어난 뒤의 경훈은 헤어 스타일부터 옷차림까지 달라져서 전문가적인 느낌을 풍긴다.
영화 전반부나 후반부에서의 모습 모두 김남길 배우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
동반 자살 아닌 명백한 자녀 살해 행위
아버지로 인해 죽임을 당해 악귀가 된 명진 역은 김시아 배우가 맡았다.
명진이는 처지를 비관한 아버지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러한 일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반 자살', '일가족 집단 자살'같은 제목으로 뉴스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아이의 의사나 기분에 상관없이 이뤄지는 가족 동반 자살 사건, 이것은 자살이 아닌 명백한 살해 행위이다.
최근엔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 대신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바꾸어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나, 검색해 보면 아직도 '동반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기사가 작성된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이 모두 자살에 동의했을까? 자신도 같이 죽겠다고 했을까?
이 영화에서의 명진이도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결국 명진이 아버지는 아이를 가둔 장롱 문을 굳건히 닫아 버렸다.
신체적 학대뿐 아니라 정신적인 학대와 방임과 유기, 폭언 등이 모두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학대 행위이다.
힘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학대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 초등학교 근처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하교하는 분위기 속에서 골목 안쪽에 서있는 한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골목 끝에 버려진 장롱 앞에서 몸을 흔들며 서있는 아이의 옷차림은 매우 남루하고, 피부 곳곳에 멍자국이 보인다.
우리가 시선을 잘 두지 않는 그곳에서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지금 이 시간도 다양한 형태로 학대당하고 있을 아동의 모습이 그려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그래도 역시 공포 영화
이 영화는 공포 영화 장르이지만 15세 이상 관람가였기에 많이 무섭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관람했다. 역시나 원귀가 된 명진이나 다른 귀신들의 무서운 모습은 그다지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역시 공포 영화는 공포 영화. 이 영화는 내게 다른 의미로 공포스러웠다.
영화 중간에 아주 짧게 들어가 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폭언, 폭행, 방치 등으로 학대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던 순간이다.
그 장면이 오히려 끔찍하게 다가왔고 소름이 끼쳤다. 영화 속만의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작고 힘없는 아이들이 무서운 어른들의 힘 아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심신이 무너져 갈 때, 그 아이들이 의지할 곳이 어디 한 군데도 없었겠다는 사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자신을 보호하고 보살펴줘야 할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들. 그들이 자라나서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가정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이런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이 땅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소망한다.
댓글0